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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시편 23편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Psalm 23

1.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be in want. 2. He makes me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quiet waters, 3. he restores my soul. He guides me in paths of righteousness for his name's sake. 4. Even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5. You prepare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anoint my head with oil; my cup overflows. 6. Surely goodness and love wi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시편23편의 첫 3절의 인칭과 4절의 인칭이 다르다. 첫 3절에서는 3인칭 대명사로 쓰여있으며, 양이 그의 목자가 얼마나 훌륭한지 자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4절에서 갑자기 2인칭이 사용되면서 매우 친밀한 톤으로 바뀐다. 이렇게 인칭이 변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양을 치는 관습과 관련이 되어 있다.

 

양떼들의 목초지

양치기에는 산지가 선호되는데, 늦가을부터 겨울, 초봄까지 양들은 골짜기에 머문다. 그곳에는 풀이 계속 자라고, 눈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의 계곡에는 많은 양들이 가둬져 있기 때문에 초봄이 지나면 목자는 양떼들을 이끌고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새로운 풀들이 자라고 더위도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여정은 목자와 양들 사이에 매우 친밀한 시간이 된다. 목자는 매일 양떼들을 세심히 살피며 이동하게 되는데, 사실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냥 단순히 양떼들을 산의 더 높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다.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며, 겨울 동안 수북히 자란 털을 입고 있는 양떼들은 가다가 탈수되어 죽기도 한다. 산으로 올라가는 유일한 길은 물줄기가 만든 바위틈으로 난 어두운 도랑이나 계곡뿐이다. 거기서의 오르막길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다.

산에서 난 물길이 왜 그렇게도 구불구불한지 생각해 본다면, 이유는 강이 산을 오르내리는 가장 쉬운 길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양떼를 더 높은 땅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 목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두려움이 실재하는 계곡을 따라 가게 된다. 그곳은 물살이 순식간에 급류로 변하기도 하고, 포식자들이 도사리고 있으며, 한발짝만 헛디뎌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 있는 곳이다.

앞서 어둠의 계곡은 목자와 양떼가 친밀하게 되는 장소라고 했지만, 또한 양들이 매우 조심스럽게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정리하면, 선한 목자는 어두운 계곡으로 양떼를 이끄는데,

  • 첫째는 그곳이 신선한 목초지로 가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고,
  • 둘째는 그곳에는 시내가 흐르기 때문에 양떼들이 목을 축일 수 있기 때문이고,
  • 마지막으로 이 계곡에서라야 여정을 가는 중에 양떼들에게 꼴을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물살이 갈라 높은 틈으로 난 샘길이 바로 시편기자가 말하는 어두운 계곡 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데, 이 길이 바로 산으로 올라가는 가장 쉬운 길인 것이다. 이것이 크리스찬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우리는 주로 슬픔이나 어려움의 시간을 지날 때 이 말씀을 읽고 돌이켜보기도 하는데, 양떼를 친다는 맥락 안에서 이 구절을 이해하는 것이 크리스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잠시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심어두신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바램에 대해 생각해 보자. 여러분은 그리스도안에서 더 성숙해지기 원하고, 행동과 반응이 더 그리스도를 닮아가길 원하고, 삶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더 생생히 느끼기 원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친밀하고 온전히 신실하심을 더 깊이 확신하기 원한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기 원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죽음이 빼앗을 수 없는 확신을 갖고 어떤 환경에서도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

 

더 높은 곳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도 삶의 여정 가운데, 이전의 목초지가 만족시키지 못하는 시점이 있다. 우리는 성부하나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님을 더 간절히 원하게 된다. 시편기자가 얘기하듯이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라고 얘기하게 된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말이다.

우리는 더 높은 곳을 갈망하는데, 전통적으로 이런 표현은 잘 안쓰지만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더 성숙하기를 갈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우리가 그 성숙함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높은 곳에 다다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더 높은 목초지로 가는 여정 - 성숙함으로 가는 길

우리는 더 높은 곳에 가는 길은 가파르고 신속한 클라이밍으로 여겨서 산의 가파른 면을 올라가기만 하면 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성숙함을 얻을 수 있고, 몇 번의 빠른 점프로 큰 영광으로 옮겨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삶의 진리는 성숙함으로 가는 길은 대개 커다란 어려움과, 위험과 두려움의 시간을 통해서, 혼자인 것만 같은 어두운 시간과 상실, 문제의 시간을 통해서, 영혼이 산산조각나는 것과 같은 경험을 통해서 온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어떤 것인가? 여러분의 삶에서 이런 경험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어떤 이들에게는 재정적인 어려움, 어떤 이들에게는 헤어짐,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 관계 문제, 감정적인 어려움 들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믿음으로 걸어간 사람들 이야기

나의 지인 중에 수라고 하는 멋진 여자분이 있었는데, 오래 전에 그녀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만났다. 젊은 여성인 그녀는 자신이 꿈에 그리던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일이 술술 풀려 아들하나 딸하나를 두고 개도 기르며 백만불짜리 가정을 이루었다. 그런데, 수많은 크리스천처럼 그녀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남편이 집에 오지 않았는데, 몇 일씩 계속해서 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중에 남편에게 새로운 사랑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믿음은 역동적으로 자라갔고, 크리스천 공동체, 자신과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깊어지게 되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샘은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항상 자신의 삶과 미래의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고, 특히 재정적인 안정을 확실하게 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그 모든 것을 걱정하느라 밤잠도 못자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승진이 될 지도 몰라서 정기 건강검진을 하였는데, 대장에 용종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대장암 판정을 받게 되었다. 진단을 받고 처음으로 그를 방문하였을 때, 그의 얼굴은 충격에 압도된 모습이었다. 그는 모든 상황을 세밀하게 계획했지만 한번의 진단으로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틀 후 다시 그를 방문했을 때, 그는 감사함으로 흐느끼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인도하시므로,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컨트롤 할 필요가 없어져 이제 그의 영혼이 평안을 누린다고 하면서 울었다. 그 일은 주님과 걷는 여정에서 그가 겪은 가장 심오한 경험으로, 단기간에 끝나지 않았다. 지난 휴가 때 그를 다시 방문했는데, 그는 대장암을 이겨냈고 13년째 암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런데 지금 그는 전립선암이 진행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호르몬 치료 외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매우 강해서,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손주들과 보내는 모든 순간들을 기쁨으로 누리고 있다. 죽음이 그의 믿음을 흔들지 못한다. 그는 대장암이라는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 동안 자신의 믿음이 성숙했음을 알게 되었다.

 

시편 23편 읽기

 

이 주제를 마무리하면서,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여정에서 이해해야 할 중요한 세 가지 주제를 나누고자 한다.

첫째 – 모든 양은 계곡을 지나게 된다.

고난은 보편적인 인류의 경험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고난을 겪게 되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시험과 고통의 시기를 지나게 되어 있다. 우리는 모두 상실, 병, 관계의 어려움을 경험한다. 북미에서는 우리에게는 고난이 없어야 한다는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다. 고난은 우리에게 올 것이다. 확실하다. 우리에게 고난이 없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고통과 슬픔이 우리에게 일어날 때 우리는 당황하고 충격을 받게 된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을 내게 일어나게 하십니까?”라고 질문한다. (그리고 나서는 우리 자신을 비난하거나 고난이 나에게 온 이유를 찾는다.)

고난이 온다는 것은 명백하다. 문제는 “고난의 여정을 지나고 있을 때 당신의 목자는 누구인가?”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목자가 없거나, 여러분을 돌보는 목자가 게으르고 신뢰할 만하지 못하며 오직 자신만 신경 쓰는 이라면, 두려움으로 가득 찬 음침한 골짜기가 발생하는 순간 그 목자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 하기 위해 한걸음에 달아날 것이다. 그리고 목자가 없다면, 고난은 그냥 괴로움일 뿐이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과 예수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라는 경이로움은, 그 고난의 여정에서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셔서 그 여정의 끝에 우리를 마침내 더 높은 초장으로 인도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고난에 대한 관점이다.

베드로는 고난이 올 때 놀라지 말라고 말한다.(베드로전서 4:12)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야고보서 1:2~4)라고 말한다.

성경의 약속은 이러한 시험조차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므로 그의 뜻 안에서 모든 것이 회복될 것이다. 누구도 우리를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향한 더 큰 사랑으로, 그분의 은혜와 주권적 돌보심, 그리고 그 영광을 더 크게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계곡을 이용하실 것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그분의 말씀이다.

 

둘째 - 음침한 골짜기는 우리가 누구며, 무엇인지에 대한 진실이 벌거벗어진 채 드러나는 곳이다.

삶의 모든 것이 평탄하고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수준으로 유지될 때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계곡에서는 편안함은 없고, 보호도 없고, 확실한 것도 아무 것도 없다. 계곡을 지날 때는 모든 것이 다 떨어져나가고 우리에게는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밖에 남은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금을 연단하고 찌꺼기를 없애듯, 알곡을 남기기 위해 겨를 체로 치시듯, 더 높은 초장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때 거기서 우리는 마침내 우리자신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서 자라가게 된다.

 

셋째 - 음침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많은 사람들이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이 사라졌다거나, 멀리 있는 듯 느껴진다고 말한다.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볼 수 없으며, 어려움 가운데 그분을 느낄 수가 없고, 극심한 고통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시편의 이 구절을 들어보라.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하나님은 당신과 함께 하신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지 몰라도 그분은 여전히 당신과 함께 하신다.

역사상 최악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그것을 증명하셨다. 그 일이 언제 일어났는가?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땅이 흔들렸고 흑암이 온 땅에 세 시간 동안 임했다. 예수께서는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소리치셨다.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참으로 그들 모두를 버린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믿음의 눈으로 자세히 봤다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음을 보았을 것이다. 그 어두운 골짜기에서 자세히 보았다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음을 봤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그들 바로 옆에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심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참고> 이 글은 2017년 pbv.thunder-bay.on.ca에서 번역한 글인데, 원문링크가 삭제되어 표기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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