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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본문은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들과 대화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고, 나도 신앙공동체 안에서 두려움을 공유할 때마다 듣게 되는 말씀입니다. 암송도 하고 있고, 수도 없이 말하고 들었던 이 말씀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묵상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
성경 버전 | 성경 구절 |
개역한글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
NIV | For the Spirit God gave us does not make us timid, but gives us power, love and self-discipline. |
CJB | For God gave us a Spirit who produces not timidity, but power, love and self-discipline. |
NKJV | For God has not given us a spirit of fear, but of power and of love and of a sound mind. |
두려워하는 마음, 두려움의 영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번역된 내용은, 영어 버전에서는 모두 "영, spirit"으로 되어 있습니다. 영어로 된 본문을 좀 더 정확하게 해석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은 우리 속에서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 절제하는 마음을 준다'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신 영은 "성령"(CJB)이므로,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내주하실 때 겁먹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지배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북한어로 번역된 성경에서는, 아래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두려움과 수집음의 령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능력, 사랑, 그리고 자체 단련의 령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딤후 1:7 God's Promises: New Testament in North Korean)
"수집음"은 "수줍음"의 북한어인데, 특이하게도 두려움과 더불어 수줍음의 영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고 되어 있네요. 물론, 수줍은 성향이 아니라, 지나치게 위축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굳이,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라고 강조하는 것은,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려운 상황 가운데, 두려워하지 않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 절제하는 마음을 만들어내는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각각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J. Henderson의 글에서 분명한 이해를 위해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래)
능력, 사랑, 절제하는 마음을 주시는 이유
사도바울은 7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은 두려움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얘기한 후, "그러므로"로 다음 구절을 이어갑니다. 무엇을 위해 하나님의 영을 주셨는지 말씀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8-10>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증거하는 일과 내가 주님을 위해 갇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처럼 기쁜 소식을 위해 고난을 받으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또 그분의 거룩한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행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 은혜는 영원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분은 죽음을 없애 버리시고 기쁜 소식으로써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령을 주시고, 능력과 사랑, 절제하는 마음을 주시는 것은 그분의 구원과 부르심에 합당한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기꺼이 고난을 받을 수 있기 위함입니다.
진정한 기독교란 무엇인가?
I. 진정한 기독교가 아닌 것은 무엇인가요?
진정한 기독교는 "두려움의 영"이 아닙니다. "두려움의 영"은 범죄자와 노예의 영입니다. 그것은 죄 지은 자의 마음을 괴롭히며, 마지막 불완전한 상태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괴롭히는 끔찍한 감정의 전주곡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움직이는 정신이 아닙니다.
우리 구주께서 세상에 오신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의 진노에 노출된 끔찍한 상황과 그 상태를 아는 데서 오는 두려움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두려워하라"는 성경의 다른 구절들과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 항상 여호와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나 (잠언 28:14a)
- 그들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어 그들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겠다. (예레미야 32:40b)
이것은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1:7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지지 않은 두려움의 영은 죄책감, 즉 하나님이 그들의 적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의 마음에 심으시는 두려움은 죄로 인해 주님을 진노하게 할까봐 생겨냐는 거룩한 질투심인 효도하는 두려움입니다.
II. 진정한 기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1. 진정한 기독교는 강력하고 효과적입니다. (능력, Power)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의 영을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서 사도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복음의 모든 강력한 효과를 경험하는 데 있습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강력한 능력입니다.
2. 진정한 기독교는 자비롭고 친절합니다. (사랑, Love)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의 영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가장 본질적으로 신성한 진리의 체계와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경험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 마음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라는 름을 얻는 것은 무엇이든 이기적인 원리일 뿐입니다. 그러나 은혜로 그것을 극복하고 그 반대되는 영이 부여됩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사랑합니다." 이 사랑이 마음에 느껴지면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상호적인 사랑의 감정이 솟아나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그분의 형상을 지닌 모든 것, 즉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들에 대한 사랑도 솟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주님 안에서 형제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까지 확장됩니다.
3. 진정한 기독교는 가장 높은 수준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류의 긴급 문제와 상황에 독특하게 적합합니다. (절제, Self-discipline)
죄인이 어둠에서 빛으로 부름을 받으면 그는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고, 열광주의자로 표현되며, 자신과는 별개의 존재가 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존중과 정의로써 그 혐의를 물리쳤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이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그에게 "절제하는마음의 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열정이란 무엇인가요? 그것은 마음에 침투한 어떤 숭고한 관념에 의해 마음에 주어진 힘입니다. 우리는 많은 분야에서 열정을 칭송합니다 - 우리는 예술가의 열정을 높이 평가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작업에 너무 많은 시간을 사용한 것에 대한 잘못이 발견되었을 때 "예술은 전적인 헌신이 필요한 것이며, 전인격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과 종교는 어떻습니까? 전적인 헌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따르는 원칙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그리스도인이 가장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동기와 목적만 다를 뿐, 그리스도인이 따르는 원칙과 동일합니다.
J. Henderson, D. D.
사랑 없는 능력은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효과가 없습니다.
능력이 없는 사랑은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효과가 없습니다.
그리고 능력과 사랑은 함께 발휘될 수 있고 또 그럴 것이지만,
둘 모두를 이끌어내려면 건전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J. Barlow, D. D.)
묵상내용 요약
삶의 크고 작은 문제 앞에서 두려움의 마음이 밀려올 때 수도 없이 들었던 이 말씀을 다시 곱씹어 봅니다. 돌아보니,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세상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고, 능력과 사랑을 구하는 것도 그 세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성령의 내주하심과 그분이 주시는 능력과 사랑, 근신하는 마음을 온전히 경험하고 누리고 전하기 위해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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